고향을 찾아가다.
故鄕을 찾아가다.
약 45년 만에 찾아가 보는 고향길이다.
오늘은 친한 이종사촌형 딸 결혼식 날이다. 결혼식 참석 겸 와이프를 차에 태우고 나는
정말
오랜 만에
내가 태어나고 그곳에서 중학교 까지 자란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우리 마을 경남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원동에서 2km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며 4km 떨어진 중학교 가는 길이며 혼자서
또 친구와 함께 걷던 여러 길은 많이 변해져 있었다.
農路며 國道는 너무 많이 새롭게 때로는 다른 쪽으로 넓게 포장되어있었다.
우리 동네로 들어가는 入口도 새로 잘 포장되어 다른 쪽으로 나있었다.
마을은
변함없이 그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새로 증축 및 현대식 수리 마을회관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긴 歲月만큼 가구 수가 늘었거나 주변이 도시처럼 바뀌었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어릴 때 저녁 먹고 못에서 약 10바퀴씩 돌던 연못이며 소를 몰고 마음껏 뛰어놀던 뒷산이며 수형이 참 좋았던 소나무며 모두가 그대로였다.
차가운 겨울 날씨라 그런지 아는 친구며 옛 어른들이라도 만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져보지만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고 문이 닿쳐있었다.
이런걸!
山川依舊 한데 人傑은 간곳없다는 걸까?
내가 걷고 일하고 숨 쉬었던 지난날이 차근차근 생각나곤 했다.
우리 마을에서 약 1km 쯤 떨어진 곳에 새로 복원된 勿溪서원에 가 보기로 했다.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원동에 복원된 물계서원 전경
이곳은 내가 알기로는 고려 때 지방 서원으로 인가 설립되었다가 그 후 조선 땐지?
폐원되었다가 최근 몇 년 전 다시 복원된 걸로 알고 있다.
우리 성가 윗 할아버지들 송국.삼문.성혼.삼수……. 많은 충신과 충절 21인의 위패와 많은 서적들 강의 학습하던 강연장...이곳에 있다.
안에는 들어가 볼 수가 없었고 주위에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안에는
어떻게 잘되어 있는 진 몰라도 내가 가본 안동의 소수서원 및 여러 서원들에 비해
진입로가 너무 좁고 주변 환경도 축사 및 마을과 너무 인접해 있어 관리가 잘 안되어 있었다.
우리 집이며 고추 밭이며 양파 심었던 밭. 논…….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아쉬움과 허무함을 뒤로하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 보기로 했다.
위치는 변함이 없건만 옛날엔 목조 건물이었지만 소실되고 지금은 사진에서 보듯 콘크리트 현대식에 알맞게 알록달록 총천연색이다.
운동장 서쪽 편에 큰 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아직도 여전하고 우리가 잘 가서 놀던 바위는 멀어서 그런지 잘 안 보인다.
학교주변 석동 성찬영 할아버지의 고택이 있다.
정말
부잣집이라 전해 들었고 그대의 권세를 보여 주듯 아직도 기와집의 위세는 너무도 당당하게 보존이 잘되고 있었다.
그의 손자 재경 나에겐 항렬로보면 손위 형님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인이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좋은 형이라 보면 된다.
특히 양파를 대한민국에 처음 보급 시키고 대중화 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하신 걸로 알고 있다.
협성농산/경화회등 많은 업적을 남겨셨다고 적혀있다.
음악:가곡 :옛 동산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