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하면서 살자.
이별을 준비하고 살자.
우리는 태어나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이별하고 살아간다.
부모님과의 원초적 인연으로부터 직계존속과 비속 또 사회에서의 여러 만남과 인연들…….
우리는
준비되지 않는 이별 속에 때론 당황과 허무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면서 숙명으로 이별을 하고 쉽게 잊기만을 원한다.
항상 우리는 너무 상대에게 잘해주기만을 노력하는 경향이 많다.
조금은 어긋나고 힘들어 보이는 사람으로 살아 보는 건 어떨까?
언젠가? 이별을 맞았을 때에 좀 쉽지 않을까?
특히
부모님, 자식들과의 인연에서는 이별이 너무 당황스럽고 힘들 때를 대비해서 너무 잘 만 해 준다면 상대는 너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정 떨어지는 행동도 가끔씩은 하고 살자. 한두 번 정도는 상대를 기억에 남도록 힘들게도 해보자. 정말 정떨어지도록 말입니다. 요즘 어느 집이나 자식들이 하나 아니면 둘인데 너무 과보호하다 보니 버릇이 없고 부족한 것 없이 무한 풍족으로 성장하는 경향이 너무 많다 보니 조그만 힘든 일에도 적응이 안되고 너무 극단적이고 단순한 행동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좀 더 인내 할 수 있고 현실 적응이 가능 하도록 또 사려 깊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학창시절에 가능하면 자신이 돈을 벌어 보도록 아르바이트 및 경제 행위, 돈의 중요성과 가치 이런 걸 체험 시켜보는 건 중요 할 것 같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일까? 나의 억지 역설일까?
정 많은 엄마가 돌아가신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간절하건만
엄격한 아버지의 잔영은 그리 간절하지가 않는 건 나의 생각이 맞는 건가? 그러나 아버지는 나에게 책임감과 인내를 가르쳐 주신 것 같다.
가장 간절한 자식을 두고 우리는 언젠가는? 헤어짐을 가져야한다.
오늘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지 만 우리는 언젠가의 이별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하고
준비하고 그렇게 살아야 겠 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끝까지 좋은 인연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헤어짐으로 살아가야하는 인연도 얼마나 많은가? 누가 헤어지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또
누가 헤어질 줄 알았겠는가? 그때 너무 당황스럽고 여유가 없어 보이고 초라하고 힘들어 보이지 말고 조금은 여유를 갖자.
우리 모두 감정을 너무 노출 시키고말고 조금은 자제하고 사는 여유를 가져 보는 게 어떨까?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눈을 감지 못하는 순간을 생각 할 때 차가운 작은 냉정의 생활을 해보자.
무조건의 사랑보다는 여유 있는 사랑은 또 어떨까?
사랑도 물질도 조금씩 가끔씩 준다면 좋을 것 같다.
준비 없는 이별 보다는 조금씩 이별을 준비하자.
2016.02.18 成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