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神秘의 賢者 老子를 생각하다.

松坡 成慶 2017. 3. 11. 20:32
  

 

神秘의 賢者 老子를 생각하다.

아침이면 햇살이 거실 안쪽에 까지 따스하게 비추이고 저녁이면 달님이 창가 아주 가까이 뜬다.

이런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는게 얼마나 소박하고 좋은 행복일까?

오늘은 노자의 무위자연을 생각하면서 책에서 본 글을 몇자 올린다.

노자관한 책은 참 많다.

몇 권을 보니 정말 신비의 人物이며 현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실존 인물인지?

아니면 神인지? 성은 어머니 성을 따라 李씨인지? 호가 담이 아니라느니 ? 周나라 사람인지? 秦나라 태생인지? 그의 고향에 대해서도?

道의 정의에 대해서도 너무 혼란스럽고 學說이 너무 많다.

나는

학자도 아니고 그런 설에는 관심이 없고 그의 思想과 가르침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몇가지만 정리 해 두고 싶을 뿐이다.

 

곡즉전 (曲則全)굽으면 온전해 진다.

자연에 直線은 없다. 노자의 다른 부분에도 큰 곧음은 구부러진 듯 하고, 큰 네모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는 듯 하다는 말씀도 있다.

풀(보리)이 유연하여 바람에 꺾이지 않듯, 어머니인 自然처럼 人間도 구부러질 수 있을 때, 온전하게 천수를 누리며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老子의 다른 부분에 지극한 부드러움에 이르도록 기를 오롯이 하여 갓난 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고,

부드러운 것은 삶으로 가는 길이요, 딱딱해 지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씀도 있고, 유연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씀도 있다.

이는 유연함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연해야 하는 것은 마음의 유연함이다. 굳센 마음은 집착의 마음이기 쉽다.

집착은 불행과 부자유의 根源인 것이다. 굳센 충절로 주려 죽은 백이 숙제의 예가 아니더라도, 집착하는 마음이 스트레스를 불러오고 건강을 해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한 것이다.

가령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 날씨 좋은 가을날 골프를 못치고 일해야 한다면, 말할 수 없는 불행과 不自由를 느낄 것이다.

또한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체육 대회를 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괴로움일 것이다.

이처럼 좋고 나쁨의 생각은 집착으로 불행과 부자유의 근원인 것이다.

정치의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정치는 적과 동지의 프레임을 가지고 작동한다. 좌우든, 남북이든 허망한 정치적 理念을 만들어 적과 동지를 나누어 다투는 것이 정치의 本質이다.

이런 이념에 집착하여 다툼을 야기하고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정치의 본질을 모르는 어리석음인 것이다.모든 것은 자연 즉 스스로 그러할 뿐 좋고 나쁨이 없고, 모든 것은 스스로 그러하게 변해 가니 집착할 바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다. 자연의 자식인 인간이 이러한 진리에 거슬러 좋고 나쁨의 집착을 가져서 불행과 부자유의 감옥에 갇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프고 어리석은 일이다.불가의 자유와 행복의 길은 집착을 멸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자유와 행복의 길도 선악과를 뱉어 내는 일로 좋고 나쁨의 집착을 멸하여 柔軟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좋고 나쁨의 집착을 멸한 삶은 무미건조한 삶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 몰입하며 지금 여기를 즐기어 달인이 되고 도인이 되어 萬事亨通해 지는 삶인 것이다.문명이 주입한 기호, 이념과 신념과 같은 좋고 나쁨의 집착은 無意識化되어 떨쳐 내기가 무척 어렵다. 집착을 멸해 유연한 마음을 가지려면, 무의식의 영향력을 의식의 깨움으로 약화시켜 나가야 한다. 늘 지금 여기에 깨어 있어 명징한 의식으로 사는 것이 자유와 행복의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굽힐 수가 있으며 꺾일 수가 있을까?

2017.03.11 묵향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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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로 가는 길에는 하얀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