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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東坡선생님 같은 삶의 자취를 남기고 싶다


東坡선생님 같은 삶의 자취를 남기고 싶다.

중국 최고의 지성을 선택하라면 나는 정말 곤란한 망 쓰림에 빠지게 된다.

이백이냐?

소동파냐?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나는 이백에 조금 더 가까울 것 같다.

그러나

東坡선생님을 다음으로 택하기엔 너무도 아쉽고 이런 선택은 안 했으면 좋겠다.

몇 년 전 이백에 대해서 되살펴 보았으니 오늘은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東坡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東坡 선생님에 대한 講義를 다시 한 번 들어 보았다

나는 왜 동파를 좋아할까?

나의 성격은 東坡 선생님의 성격을 조금은 닮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고 약간의 자기 고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詩이며 政治家 哲學家.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정말 약관의 나이에 진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천재 시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한테도 좀 잘 안 되는 보통에 미치지 못하는 게 몇 가지는 있다고 한다.

노래, , 바둑은 잘 못 했다고 전해온다. 술은 잘 못 했지 만 항상 준비해 다녔다고 한다.

 

동파의 호를 해석하면 글자 그대로 동쪽의 조그마한 언덕이란? 뜻이다

방송통신대

김성곤 교수님의 해설을 들어보면 유배지 근처 황무지 땅인 동쪽 돌밭을 말하는 것 같다.

유배 생활이 너무 힘들고 중앙 집권당 권세가들의 통제가 심하여 東坡의 생활은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東坡선생님의 글과 인품은 순수한 心性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돕고 싶은 맘을 생기게 하나 본다.

동쪽 언덕의 조그만 황무지를 지방 관청으로부터 받아서 糊口之策을 해야만 한 것 같다.

동파선생님은 무척 肯定的인 사람이며, 유모어도 능하신 哲學的인 분이었던 것 같다.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자연에 자신을 싣고 흐름을 잘 이용하여 흘러 다니는 시인이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좋은 지역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면서 살 수는 없다.

생활, 직업, 학교,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만 살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교통이 좋고 편리함에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곳을 소유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가보고 四季의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식물이 자라고 좋아하는 꽃을 보면서 생활할 수가 있는 게 얼마나 좋은 환경이란 말인가?

 

위대한 시인들의 눈에는 대부분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보이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동파선생님도 달과 바람. 無盡藏한 자연을 시제에 많이 표현했고 즐겨 사용하셨다.

동파선생님의 불후의 걸작 赤壁賦를 보면서 다시 해석해 보고 음미해본다.

너무나 화려하고 심오하며 자연의 상태를 현실로 보는 듯 한 살아있는 문장력을 느끼면서

은유와 깊은 사유는 얼마지 않아 천년이 되는 오랜 세월 동안도 우리가 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인가 ?

그 유명한 동파육을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돼지고기 요리를 개발하여 주민에게 늘리 보급 시킨 걸 보면 목민관으로서도 인자함과 따뜻한 심성을 가지신 분인 것 같다.

胸中有竹

동파 선생님의 대나무도 잘 그렸다고 전해온다.

대나무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대나무를 잘 알아야 하며 대나무 하나하나 모습을 잘 그리는 게 아니고 정신과 기상을 그려야 된다고 했다.

의 특성 중에 마디마디 사이로 비어 있는 것 텅 빈 空虛, 맘속의 모두를 비워 두는 것

이것도 중요 할 것 같다.

대나무는 또 자신을 경계하는 데도 중요하다.

기개와 곧음

속되어지려는 자신의 맘을 경계하고 바로 잡아 주는 회초리 하나쯤은 만들어 마음에 채찍을

한 번씩 해볼까?

오랜

귀양살이에도 기개와 자존감 자기주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음을 보여 주었다.

로써 집권 세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며 물질과 권력 앞에 조금도 자신의 이론과 철학에 흔들림 없이 저항했다.

선생님은 堤坊을 쌓고 治水管理도 잘 하셨다고 전해오며

백성을 사랑하고

잘 다스리려는 목민관의 자세는 왕안석의 당시 신법을 수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와 위민주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고 행동으로 보여 준 시인이며 정치가이다.

赤壁賦

붉은 벽에 시를 썼다 .

어떻게 썼을까? 이백도 남의 담벼락에 시를 썼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런 文化가 유행했던 것 같다.

더 좋은 詩想이 있으면 그 옆에 적어보고 좋은 문화인 것 같다.

강가에 배를 띄워 친구 양세창과 뱃놀이를 하면서 달을 부르고 바람을 부르고 를 나누고 너무 아름답고 멋지지 않나?

동파 선생님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친구의 목청에서 술 넘어가는 소리라고 하셨다,

본인은 술을 많이 못 하셨지만 술자리와 분위기는 즐겨 하신 것 같다,

大人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자연스레 되는 것 같다.

위대한 시인의 가정

아버지 소순,동생 소철, 소식을 3 소라 부른다.

부자지간 형제지간 잘 지냈다고 전한다.

또 모두 한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얼마나 잘 지냈으면 동생과 함께 묻히고 동생과 함께 시로써 많은 교류를 하면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시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쉽고 간결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을 노래하고 표현하든 자연스럽고 은유와 사유의 깊이가 너무 지나치고 난해하다면

좋은 표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적벽부가 있는 장강에 가 볼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천재 시인 동파 선생님의 그날 밤을 回想해 보고 싶다.

東坡육을 시켜 놓고 黃酒를 한잔 마셔 보고도 싶다.

오랜 귀양살이를 하면서 약간의 傍觀者가 되어 어떤 일에도 바른 판단과 바른길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갖게 되셨는가 생각이 든다.

때로는 傍觀者의 자세가 되어 살아 보는 것도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하잖은 황무지 동쪽 언덕은 동파 선생님이 계셨기에 유명한 동쪽 언덕 땽이 되었다.

그곳의 높이와 크기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누가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사느냐가? 중요 할 것 같다.

나도 통도사가 좋아서 자주 간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음악을 들으면서 좋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변해가는 통도의 四季를 보면 정말 마음이 편하다.

나의 평생 功業이 별것 없지만, 마음을 어느 곳에 메어 두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뭘 고집하지 않는 흐름에 맡겨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

人生에서 승자와 성공은 어떤 것일까?

高官大爵의 벼슬과 많은 물질일까?

아니면 선생님처럼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사시려고 노력하면서 그쪽으로 의지를 끌고 가신 분일까?

많은 잡다한 추억과 자국이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만의 짙은 자취와 자국이 필요할 것 같다.

동파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햇볕이 따뜻한 아침이다.

2018.06.01

松波 成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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